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지프(Jeep)는 전쟁의 역사와 함께한 자동차이다. 제2차 세계대전때부터 선보인 이 자동차는 특히 산악전이나 기습작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로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도 큰 활약을 펼쳤다.
전쟁의 시대가 종료된 후 지프는 민간용으로 개조되면서 보다 더 넓은 분야로 퍼져 나갔다. 이 지프는 또한 현재의 SUV(Sport Utility Vehicle)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지프가 최초로 탄생한 곳은 독일이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은 전차개발이 금지되자 이를 대체하기 위해 4륜 구동 차량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개발과정을 거친 후 마침내 1937년에 G-5라는 최초의 모델이 탄생했다. 메르세데스-벤츠 G-wagon의 원조가 되기도 했던 이 차량은 기동성이 매우 우수해서 제2차 대전에서 맹위를 떨치며 교전 상대국이었던 미국과 유럽의 연합군에게 소름끼치는 존재가 되었다.
이런 G-5의 기동력에 충격을 받은 미국에서는 이 차량에 맞설만한 차량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즉 모든 지형에서 운행이 가능한 4륜 구동이면서 무게는 가볍고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만한 차량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밴텀과 윌리스
위와 같은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1940년 7월에 미국방성에서는 제작에 참여하기 위한 입찰조건을 내놓았다. 외관상으로는 기존의 포드 T-모델과 군용 모터사이클을 대체할만한 기동력이 뛰어난 정찰차량이었지만 세부조건은 보다 더 까다로웠다.
그 세부조건들은 다음과 같다. 먼자 4륜구동이 되어야 하며 차량의 무게는 1300파운드를 초과하지 않고 적재중량 0.25t 이하에 승차정원은 3명으로 제한되었다. 이외에 차체의 바디는 사각형이어야 하며 접이식 앞 창문을 가져야 하고 휠베이스는 2032mm, 최고속도는 80km/h가 되어야 한다는 매우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게다가 49일 안에는 40대의 시험차를, 그리고 75일 안으로 70대를 납품해야 한다는 납품조건도 덧붙였다.
이런 국방성의 입찰조건에는 2개사가 입찰했다. 이전에 미 육군에 정찰용 차량을 공급한 경험이 있던 윌리스 오버랜드와 아메리칸 밴텀이 그들이었다. 훗날에는 포드사도 참여한다. 먼저 공급한 쪽은 밴텀사였다. 이 회사에서는 비포장 도로에서의 테스트와 각종 내구성 테스트를 거친 시험차인 '플리츠 버기'를 공급했던 것이다. 이어서 윌리스 오버랜드사에서는 '윌리스 쿼드'를 내놓았다.
이외에도 포드는 기존의 퍼거슨 트랙터를 개조해서 위 두 양사에서 내놓은 차량보다 중량이 훨씬 가벼운 GP를 개발했다. 이들 세 회사는 각자가 개발한 양산형 모델들을 1940년 미군에 발표했고 이어서 70대의 시범 모델을 제작하도록 허가받았다.
윌리스 납품
이듬해인 1941년에 미군은 2차 계약 조건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밴텀사에서는 1500대의 40BRC 모델을 제작하기로 했고, 포드는 GP보다 개선된 차량 1500대를 제작하기로 합의했다. 윌리스 오버랜드사에서도 1500대의 쿼드를 추가로 제작하기로 했다.
같은 해 7월에 이르러서는 월리스가 최종 승리자가 되었다. 윌리스사의 쿼드는 밴텀의 버기에 비해 무거웠지만 힘이 뛰어나서 결국 윌리스의 쿼드가 베이스가 되고 밴텀과 포드사에서는 이에 대해 지원하는 방향으로 합의가 되었다.
초기의 지프에 해당하는 윌리스사의 MA는 핸들에 변속기어가 장착됐고 또한 원형 계기판과 좌측 핸드 브레이크가 탑재된 것이 주요 특징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지프의 활약은 매우 뛰어났다. 뛰어난 기동력으로 산악전이나 기습작전 등에서 독일의 G-5에 필적할 만한 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전쟁에서 지프는 전투용 뿐만 아니라 수송차나 구급차로도 개조되어 사용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실용성에서도 뛰어나서 이 차량의 보닛을 임시 테이블이나 식탁 등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지프라는 이름은 1941년 말에 윌리스 MA에서 MB로 이름이 바뀌고 수십만대가 보급되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그 유래가 매우 다양하다. 우선은 미 육군의 정찰차인 제너럴 퍼포스의 머리글자인 'GP'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포드사가 명명한 G.P.W(Government·P-Wheelbase·Willy's)를 빨리 발음하면서 생겨났다는 설이 있다. 또 이외에도 이당시 인기 있던 만화인 '뽀빠이'에 등장하는 요술 강아지인 '유진 더 지프'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위 세 회사중의 최종 승리자였던 윌리스사에서는 1946년 'Jeep'라는 명칭의 저작권을 획득했다.
전후에는 민간활용으로 개조
지프의 활용 가치는 전후에도 이어졌다. 가령 미국에서는 이 지프를 승용차나 레저용 등으로 활용했고, 유럽에서는 승용차나 농사용 차량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지프 수요가 급증하면서 한국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일본은 이 지프를 제작,공급하면서 경제를 재건하는 밑바탕이 되기도 했다.
이에 발맞춰 윌리스사도 역시 군용지프를 민간용으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44년에는 시민차라는 이름의 CJ-1A로, 다음해 8월에는 최초의 민간용 지프인 CJ 2A가 출시됐다. 특히 이 모델에는 테일게이트, 오토매틱 와이퍼 등의 편의시설이 다량으로 추가되기도 했다.
윌리스는 1953년에 헨리 J 카이저에 의해 인수되었는데 이때 회사명이 윌리스 모터로 변경되었다. 이후 1954년에는 CJ5라는 모델이 생산되었는데 엔진과 액셀 등이 개선되면서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이 모델의 바탕이 됬던 군용지프인 M38 A1의 1951년형은 특히 한국전과 월남전에서 큰 활약을 펼친 적이 있었다. 또한 이 CJ시리즈는 한때 국내에서 제작된 코란도(KORANDO) 초기 모델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1970년 2월 다시 아메리칸 모터스(AMC)에 인수된 지프는 1974년에는 체로키를 출시하는데 이 차량은 지프 역사상 가장 성공한 차로 인정받고 있다. 이후 1987년에는 CJ시리즈의 생산이 중단됨에 따라 CJ7의 오픈 바디 프레임은 그대로 유지한 채 기존에 출시된 체로키의 사양을 대부분 도입한 랭글러가 출시됐다. 이중 랭글러 YJ는 지프 모델 중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사각형 헤드램프가 적용된 모델이기도 했다. 이 차량 역시 63만대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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